독일에서의 삶 = 공부여서 그런지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도 애매한 이번 포스팅 주제이다. 도시 규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대학 생활 방식에도 도시별, 학교별로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학사~석사 졸업 기간 동안 느꼈었던 중소 도시 뷔르츠부르크에서의 대학 생활 장단점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전적으로 중소도시 = 뷔르츠부르크라는 기준을 가지고 쓴 글이기 때문에, "우리 도시는 아닌데? 우리 학교는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 이런 도시/대학교도 있구나"하고 참고만 했음 좋겠다.
왜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공부하는가?
장거리 연애를 제쳐두고,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건 전적으로 연구때문이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쭉 미디어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어권을 제외하고 고려해 볼 수 있었던 선택지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미디어 연구를 하고 싶어 복수 전공을 하며 한 교수님과 석사 진학 상담을 받은 적 있는데, 실무 경험을 쌓으라는 게 첫 말씀이셨다. 그리고 다른 분과 짧게 상담할 땐 우선 석사에 들어오라는 답변뿐이었다. 대학 커리큘럼 내에 연구 실험연구나 통계학 등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연구 계획서를 써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도 컸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도 한몫했다.
또한 마케팅이나 언론홍보 분야보다, 연구 파트가 더 강하면서 미디어 심리학과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 접목된 뷔르츠부르크 컬리큘럼은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일치했다.
심한 길치에 방향치이기 때문에 이번에 주요 도시를 살펴보면 좋을 듯하여 주요 대학이 위치한 도시를 표시해봤다. 나라가 커서 그런가 넘나 많은 것.. 표시되지 않은 곳에도 대학교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관심없는 내가 한번이라도 들어봤다면 그래도 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대학교가 아닐까하는 주관적인 기준으로 표시했으니 "여기가 최고!!!!"라는 의미는 아니다.
독일 유학 장점
비교적 저렴한 학비와 대중교통비
처음 입학할 당시 100유로 남짓했던 것과 달리, 물가 상승으로 근 150유로까지 올랐으나 한국에 비해 학비가 저렴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학비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통비까지 함께 산정된다 (Semesterticket + Studentenwerksbeitrag). 이로 인해 뷔르츠부르크 내의 대중교통 (버스, 트램, Nahverkehr)은 유효한 학생증을 가지고 있을 시에 무료로 이용할 수있다. 한 번 버스 이용할 때 약 3유로 정도 지불해야하는 걸 고려해보면, 대학을 오가는 학생들에게 꽤나 매력적이다.
한편, 가장 쉽게 수도에 위치한 베를린 자유대와 비교해 볼 때, 뷔르츠 부르크 학비는 자유대 학비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니 굉장히 싼 편에 든다. 그러나 도시별, 대학별로 학생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다르고, 특히 교통비가 커버되는 구역에 따라 전체 학비가 전반적으로 크게 차이난다. 타 도시의 경우, 같은 주 내에서 학생증으로 오갈 수 있는 반면, 뷔르츠부르크 대학은 안타깝지만 뷔르츠부르크 내 혹은 근처 작은 마을까지만 대중교통비가 학생증으로 커버된다.
한 학기동안 150유로로 학생 혜택을 누리고 있을 때마다, 독일인이 내는 세금을 야금야금 까먹는 양아치가 된 기분이 가끔 들곤 한다. 독일 대학교의 학비가 공짜라는 말은 옛말인 것 같고, 한국에서 장학금 받을 기회가 많은 걸 생각하면 누군가한텐 20만원도 아까울 수 있을 것 같긴하다.
https://www.uni-wuerzburg.de/studium/studienangelegenheiten/beitraegeundgebuehren/
3년제 학사 + 2년 석사 과정
독일에서 학사 졸업 후 바로 실무 경험 쌓으며 취직하는 졸업생들도 당연히 많다. 과거 Magister (마기스터) 과정의 영향때문인지 몰라도 3년 학사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1년 반 ~ 2년 석사 과정으로 바로 진학하는 경우도 꽤 흔하다. 연봉 협상 시에도 석사생이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석사를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한국 지인들이 독일로 쉽게 이직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력이나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석사 졸업장이 없어서 채용 첫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 한국 직급 체계로 보자면 대리 이상 급으로 이직하려하니 석사 졸업장이 필수인 것이다. 한국 대학 과정의 4년 + 취준 기간을 한다면 5년 학석사 과정이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당연히 학사 3년 졸업을 목표로 한다면 1년이란 시간을 버는 셈이다.
풍부한 연구 환경/인프라와 좋은 대우
이 부분이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연구자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독일로 모이게 만드는 것 같다. 이공계 분야가 세계적으로 나름의 명성이 있고, 그에 따른 연구소나 회사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경험을 쌓거나 취업하기에도 유리한 점이 많다.
독일에서 다시 학사를 하는 동안엔 3년이란 시간이 버려진다고 너무 아까워했지만, 그 사이에 원론적인 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 학사 3, 4학기 때부터 석사 전체 학기. 내 학과의 경우 팀플로 연구 주제를 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그에 맞은 실험 연구를 계획하고 마지막에는 논문을 제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처음 Forschungsprojekt를 할 때는 간단한 실험 연구(예: 사용 미디어 화면의 크기에 따라 어떻게 미디어 이용자가 다르게 반응하는가?)로 시작하여, 점차 복잡한 실험 모델/연구방법(예: VR-게임과 친사회적 행동 관계, 암묵적 연관 테스트(Implicit Association Test, IAT)를 이용한 편견 연구 등) 과 통계 분석 방법을 다뤄보면서 석사 논문 때는 완전한 연구를 혼자 조사하고 계획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다.
생물학과의 경우, 학사 때부터 연구실 경험을 해 볼 수있는 Übung이나 Praktikum이 비교적 많다. 실험실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교수와 컨택하여 한 학기나 몇 주 경험해 볼 수도 있으니 진입 장벽이 낮다.
물론 계약에 따라 천차 만별 다르겠지만, 석사 졸업한 후 물론 계약에 따라 천차 만별 다르겠지만 박사생이나 박사후 과정생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은 편인 듯하다. - 최악의 교수 얘기는 유학 단점에서 다룰 것이다.
https://oeffentlicher-dienst.info/tvoed/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
안전한 곳에 사는 것.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이다. 사실 독일 전체가 안전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많은 외국인들이 인종차별자들의 분풀이 희생자가 되기도 하며, 프랑크푸르트 역 앞에만 해도 약쟁이들과 거지가 수두룩하다. 확실히 큰 도시에 비해 사건 사고가 적고, 무엇보다 바이에른에 위치한 부유한 동네에 속하기 때문에 거주 환경도 상당히 깨끗한 편이다. 인구 수에 거지, 약쟁이 비율이 대체로 정비례하겠지만, 뷔르츠부르크 도시 자체가 과거에 왕이 휴가를 보내러 온 동네여서인지 작지만 예쁜 도시이고 몇 번 지나다니다보면 고정석에 앉아 있는 거지의 얼굴을 전부 알 수 있을 정도로 수가 적다. 사실 함부르크에서 밥먹고 있는데 거지가 다가와서 구걸하는 걸 처음 겪어봐서 놀란 1인. 뷔르츠 부르크에선 6년간 한 번도 겪지도 보지도 않았던 일인지라.. 길을 걸어다닐 때 길거리나 주변 환경이 안전하고 깨끗한가도 심리적인 부분에 은근히 많으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도시/국가 간 여행하기 좋은 접근성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주변 도시나 나라에 여행하기 편하다. 유럽 내에서 버스나 기차, 자가용만으로도 짧은 시간 안에 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 그러기엔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 빨리 넘어가야지.
독일 유학 단점
한정된 과목 선택지
전체적인 커리큘럼을 보면 수업 자체가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전공 과목"이 아니라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다. 때문에 가령, "마케팅이 싫으니 PR 과목으로 대신 전공 과목 점수 채울래"라고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싫은 과목도 꾸역꾸역 들어야 졸업이 가능하다. 또한 교양과목(예술, 과학 등)으로 들을 수 있는 allgemeine Veranstaltungen이 따로 열리지 않는다. 즉 소위 "알뜰신잡"을 얻고 싶다면 타 학과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 내용은 당연히 만만치 않겠지만 말이다.
"관계"의 중요성
이 부분은 이미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사항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아래의 포스팅을 참고하길.
[독일 유학 Blahblah] 독일에서 살아남기 2. Vitamin B (Beziehung) “관계”가 중요한 독일
기다림의 나날들
느려도 너무 느리다. 돈을 빼가는 건 그 누구보다 빠른 것같은데, 일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 그런데 이는 대학 내에서 팀플을 할 때도 체감하는 부분이다. 예전 세대의 사람들은 "정확, 성실"이란 단어와 적합했을 지 몰라도, 요즘 세대와는 동떨어지게 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유학 오기 전, 90년 대에 10년 이상 유학을 했던 분들로부터 그 세대의 독일인의 생각 방식과 삶의 방식을 많이 접해서 기대가 너무 컸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실망했던 부분이다.
학교 내 따돌림 및 소외, 인종차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인만큼 외국인과 마주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온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차별/편견은 크게 명시적/외재적(explizit) 혹은 암시적/내재적(implizit) 형태로 나뉘고, 차별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인 시선과 행동, 말로 은근하게 차별하는 행위를 내재적 차별 (implizite Diskriminierung)이라고 한다. 대놓고 적개심을 보여주는 차별 행위는 물리적/신체적인 위협이나 위험성을 이미 자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과 달리, 은근한 내재적 차별은 사람의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며, 많은 독일 친구들은 "우린 오픈 마인드야, 그럴리가 없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해 논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피해버리기 때문이다.
인사를 무시하거나 팀플을 같이 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 등 학교 내에서의 소외감은 생각보다 크다. 특히 작은 도시일 경우 학과 내에 외국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고립감은 심하다.
아울러 인종차별 문제는 어느 도시이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바이에른의 콧대가 그냥 가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보수적인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길가다가 누군가 갑자기 소리 지르기도 하고, 니하오의 인사도 자주 받는다 - 이걸 인종차별로 보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동양인 =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로직부터 그냥 잘못되고 무지한 거라고 본다.
나와 남친은 키가 큰 축에 들어서 그런지, 특히 남친은 인종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뷔르츠부르크에선 인종 차별이 일어나는 줄도 몰랐다고. 한편, 여기에서 1년 간 살던 교환학생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체구가 작은 여학생들은 인종 차별을 너무 자주 겪는다고 한다. 사람 골라가면서 괴롭히는 거지.. 하지만 이와 정 반대로 베를린에서 살다가 이사 온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여긴 천국이란다. 대도시에선 매일 같이 인종 차별과 성적 희롱을 당해 진절머리 난다고.
아래의 단점들은 특히 작은 도시로서의 뷔르츠 부르크에서 체감할 수 있는 단점이기 때문에 따로 적어보았다. 아마 작은 도시에서 유학을 할 경우, 자주 맞딱뜨릴 수 있는 공통적인 문제일 수도 있을 것같다.
부족한 영어 수업/커리큘럼
교수진/강사진이 99% 독일인으로 구성된 학과여서 그런지, 영어로 진행된 과목은 딱 한 번 석사에서 들을 수 있었다. 영어가 중요하다, 인터네셔널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학교 수업 그렇지 않았다. 독일인 교수진에게 영어로만 수업하라고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타 학과(예컨대, 생물학과)의 경우 독일어/영어 과정이 나눠져 있으며, 외국인 학생도 비교적 많은 편이여서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도 많았고 영어로만 소통하는 연구실도 있다. 그러나 베를린이나 뮌헨에 사는 주변 지인들의 말만 들어봐도 확실히 뷔르츠부르크에서는 영어를 접할 기회가 적고, 영어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적은 일자리와 독일인을 선호하는 회사들
우선 작은 도시인만큼 영어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 기업은 거의 없다 - 적어도 내 분야는 뷔르츠 부르크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큰 회사 자체도 없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하기 위해서는 타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만약 인턴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좀 더 큰 도시(뮌헨, 프랑크푸르트 등)로 가야하므로, 사실 Werkstudent와 같은 자리는 찾기 힘들다. 내부에서 이미 서로 물려주기 식으로 자리가 넘어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기회는 더 적어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자극제의 부재
경쟁적인 분위기를 좋아하거나,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라면 이 조용한 도시가 안맞을 수도 있으리 생각한다. (라고 쓰고 내 얘기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으쌰으쌰 해서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승부욕이 자극되며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뷔르츠부르크는 지겨운 도시이다.
반대로 긍정적이라 함은, 지겹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서 자기 계발을 엄청하게 된다. 가령 취미같은 것들.
가만보면 이렇게 독일과 안 맞는데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싶다. 독일 유학이 모든 성공을 가져오지도, 삶의 전체를 바꾸는 것도 아닌 내 전체 인생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독일이 아니여도 전 세계에 나라는 많으니 언제든 다른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니 항상 부담이었던 독일에서의 삶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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